-한때 우리는 단념斷念의 철학哲學을 배웠느니
벼슬을 잃으신 할아버지는
벼슬과 나라를 고스란히 단념하면서
술과 친구와 글에 묻히어
말썽 많은 세월을 잊은 듯이 보내시더니……
나라를 잃으신 아버지는
육친도 벗도 고향도 단념하면서
어무찬 설움에 큰 뜻을 세우시고
밤길로 밤길로 국경을 넘어가시더니……
에미도 애비도 잃어버린 자식은
한때 제 몸까지도 단념하면서
갈라진 하늘을 목 메이게 호흡하더니
모조리 단념하기를 서로 맹세도 하였더니라
1945.11.10.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