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숨결
1. 경칩驚蟄
고덕산의 밋밋한 등성이에도 모악산의 그 억센 산줄기에도 뒤덮인 눈은 좀체 가실 성싶지 않은데 유달리 파란 하늘이 산자락을 따라 또렷이 곡선을 그어 내리고 다냥한 햇볕이 퍼붓는 날이면 사뭇 등이 근지럽다.
지금쯤 땅 깊이 들어앉아 있을 개구리가 기지갤 켤 것이요 뱀도 눈을 부스스 뜨고 있을 것만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엊그제 불던 마파람에 버드나무도 눈을 떴는지 포로소롬한 게 제법 구성지게 하느적거리고 있다.
나로도羅老島에 매화가 만발했다는 화신이 전해 온 지는 이미 오래 전 이야기요 아마 여수 오동도에도 동백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였으리라. 이렇게 날씨가 풀리고 보면 어디라 없이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생활을 계산하다가 보면 그예 봄을 여의기 마련이다. 하기야 구차한 대로 오동도쯤 떠날 양이면 못 갈 바도 아니겠지만 생래生來의 괴벽인지 몰라도 여행이고 보면 좀 사치스러워야겠다는 선입견이 앞서서 좀체 떠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벌써 7·8 년 전인가 보다. 눈이 장설壯雪로 쌓인 정월 초승이었다. 미처 아무 준비도 없이 그저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약간의 여비를 의지하고 불현듯 떠난 것이 여수행이었다. 평소에 한번 다녀가라는 H군의 호의도 있던 터라 무심코 떠난 길인데 막상 여수에 가보니 가던 날이 장날이었던지, H군은 전날 광주로 떠나고 만날 길이 없었다. 초행길이라 택시를 잡아타고 오동도엘 갔더니 사진사가 두서너 명 조용한 섬을 서성거릴 뿐 그대로 인적이 없는 고도였다.
사진사의 안내를 받아 산에 오르니 만산滿山 검푸르게 뒤덮은 동백·해송·시누대가 다냥한 겨울 햇볕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속에 남향받이에는 벌써 동백꽃이 숱하게 피어 있는 게 아무래도 겨울답지 않았다.
사진사가 골라잡는 대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산을 내려오는 길에 사진사의 군소리도 아랑곳없이 동백꽃 몇 송이를 외투 안주머니에 간직하고 그 길로 해변에서 갓 잡아왔다는 전복을 사가지고 막차로 되짚어 돌아오고 말았다. 그렇게 궁색한 여행은 난생 처음이었으므로 그 뒤부터는 그런 무모한 여행은 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을 했고 또 해본 일도 없다. 그 뒤에도 오동도엔 수차 다녀왔지만 그래도 그때 궁색하게 다녀온 것이 머리에 남을 뿐이니 어찌 생각하면 그 무모한 여행이 차라리 인상적이었던가 싶다.
동백꽃을 읊은 <남해서정시초> 5편도 그때 얻은 것으로 화우들의 그림을 곁들여 발표하던 일이 바로 어제런 듯 새롭다.
갓 잡아 온 전복을 흥정하는
남도 사투리에도 물씬 풍기는 바다 내음.
‘머시 비쌀납디어’
싸 주는 전복을 들고 돌아와
먼 고향에 엽서를 띄우고
동백꽃 가슴에 지닌 채
밤차를 기다린다.
그때 오동도 어귀에서 전복을 팔던 아낙네, “머시 비쌀납디어” 하던 그 악센트가 지금도 내 귓전에 맴돌고 있는 것만 같다. 경칩이 지나기 전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역시 오동도다.
그러나 막내둥이 등록금이 까마득하고 보니 아예 여행은 뒤로 미룰밖에 없다. 갓 잡아낸 전복이나 멍게 대신에 요즘 비닐하우스에서 내온 상치로 입맛을 달래며 머지않아 나오게 될 쑥부쟁이·두릅·취나물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정원 한 구석 빈 자리를 골라 고수라도 심어 실컷 맛볼까 하고 오늘은 전지가위를 들고 뜰을 두루 살피다 보니 수선이 벌써 나오는가 하면 복수초도 꽃대를 올리고 있는 데 놀랬다. 아뿔싸, 백모란의 무장 해제도 늦었다 싶어 끌러 헤치고 보니 벌써 노란 싹이 트고 있지 않은가.
이쯤 되고 보면 어느 산골짝 웅덩이에는 개구리도 알을 풀었을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봄은 오고 있는 것을 고덕산은 정상에 휜 눈을 이고 능청맞게도 시치미를 떼고 서 있었구나. 장미를 전지하다 보니 백목련도 꽃망울이 어딘지 모르게 부풀어 오르고 라일락 꽃봉오리도 토실토실 여물었다. 후박도 이젠 7·8 송이 탐스럽게 꽃을 맺었으니, 5월이면 장미와 더불어 그 진한 향기가 찾아올 것이요, 이젠 길이 넘도록 제법 틀이 잡힌 태산목도 20여 송이의 꽃을 달고 있으니 어찌나 대견스러운지 모르겠다. 내일 나들이에는 칙칙한 외투를 벗어 던지고 봄 양복에 시우詩友 R에게서 선사받은 넥타이를 매야겠다.
계절이 옮아가는 발자취의 이 그지없는 매력 더구나 오랜 겨울의 칩거에서 옷깃에 기어드는 산드라운 마파람은 그대로 껴안아도 시원찮도록 정겹다. 이대로 훌쩍 5·6 일만 지내고 나면 복수초의 노란 꽃 이파리에 가는 바람이 사운대고 이따금씩 꿀벌도 찾아와 잉잉거리겠지……. 내일쯤엔 겨우내 방안에 가두어 두었던 소심란도 춘란도 문주란도 내놓고 새로운 봄볕에 세례를 받도록 해야겠다.
2. 춘궁
우수·경칩만 지내고 보면 오동도 동백꽃은 벌써 이울기 시작한다는 소식이다. 춘분을 몰고 산협을 돌아오던 남풍은 섬진강 물줄기를 제멋대로 흔들어 쏘가리·빙어 떼의 곤한 잠을 일깨운 다음 그 길로 구례 산동에 들러 산수유 노란 꽃 봉지를 터뜨려 놓고 사뭇 품 안으로 기어들기 마련이다.
이맘때 햇볕 풀린 강변이나 들녘엔 갓 나온 쑥을 뜯는 아낙네의 손길이 바쁘다. 겨우내 미나리로 달래보던 입맛도 투정이 느는 것은 바로 요즘이다. 쑥부쟁이는 아직 이르지만 돌나물과 곁들인 달래무침과 더불어 파란 쑥탕의 맛이란 감칠맛이 있어 일미다.
머리맡에 갖다 놓은 조간의 진한 잉크 내음새에 살며시 눈을 비빈다. 덕진만 해도 이번 비에 보리둥이 무두룩히 올라왔을 것이요 종달새 소리가 한창일 터인데 철이 이른 탓일까 이 근처엔 들려오지 않는다. 펼쳐 보는 신문에는 교포 북송문제가 가득한가 하면 또 티베트 의거가 대서특필되어 있어 움직이는 세계가 그저 어수선할 따름이다.
더욱 가슴 아픈 아침이다. 춘궁이라는 숙어가 미국이나 유럽에도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나는 모른다. 중국 사원辭源을 뒤져 보아도 춘궁이란 문자는 아직 발견을 못했는데 우리말 사전에만 버젓이 올려놓고 가로되 ‘농가에서 양식이 떨어져 궁하게 지낼 때 곧 음력 3, 4월경’이라 설명을 해 놓고 친절하게도 궁춘窮春이란 말까지 덧붙여 놓았다.
대륙의 새끼손가락이 아니면 간사한 혓바닥같이 낼름하니 붙어 있는 반도가 어찌 보면 갈 데 없는 빈상이어서 이렇게 가난하기 마련인가?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차라리 이 혓바닥을 태평양 가운데쯤 던져두었던들 오늘의 이 비극과 수난은 없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언제부터 뼈에 사무치는 가난이 우리 겨레를 엄습하였던 것일까.
싱거운 신문을 밀어놓고 버릇삼아 읽어 오는 당시선唐詩選을 펴본다
春眠不覺曉 춘면불각효
處處聞啼島 처처문제조
夜來風雨聲 야래풍우성
花落知多少 화락지다소
맹호연孟浩然
날 새는 줄 모르고 든 잠은 달드라
베개머리 들려오는 먼 새소리
밤새어 불어 예든 비바람 속에
꽃은 또 얼마나 떨어져 쌓였을까.
춘궁에 어찌 이런 여유 있는 멋을 지닐 것인가? 어디서 누가 풀뿌리를 캐먹든 나무껍질을 벗겨먹든 모르쇠하고 이런 봄과 더불어 낭만을 누리고도 싶다.
3. 가해자 없는 봄
벌써 한 달 전 일이다. 불현듯 남해의 동백꽃을 구경하고 돌아 온 뒤부터 실상 나는 겨울을 느껴보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기에 눈에 뒤덮인 산이라거나 때때로 설레는 눈송일 볼 적에도 차라리 봄의 입김이 더욱 묻어오는 호흡이거니 여길 도리밖엔 없었다.
대리석을 바라볼 때마다 이미 그 속에서 이윽고 완성될 조상彫像을 예견했다는 미켈란젤로처럼 저 눈 속에서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어린 봄의 모습과 그 가쁜 숨소리를 역력히 들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노상 성급한 탓만도 아닐 게다.
며칠 전만 해도 몹시 앙탈을 부리던 거센 바람이 저대로 이젠 단념을 했는지, 재빠르게 부드러운 손길로 수액이 도는 미끈한 실가지를 어루만지고 지나가는가 하면 때로는 버르장머리 없이 품 안에까지 기어들고 보니 겨울은 이미 떠난 지 오랜가 보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제각기 눈부신 설계를 게을리 해본 적이 없건만 그것이 벅찬 설계로 중단될 때 계절을 원망하는 수가 없지 않다. 더구나 그 계절이 봄이고 보면 자신들의 소망을 봄에게 지우게 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아왔다.
그렇다고 봄이 우리에게 무슨 약속을 해 온 것도 아니요 우리에게 커다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더구나 아니지만 제각기의 설계와 거리가 멀거나 기대를 저 버리게 되면 으레 봄을 가해자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가해자를 찾아보기는커녕 까마득히 가해자들을 잊어버린 채 체념이란 독한 술에 취한 나머지 차라리 한 송이의 꽃이나 한 마리의 새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선량하게도 불평할 때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실 우리도 한 송이의 꽃이나 한 마리의 새처럼 자연계의 한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우리들의 생활을 자연적인 시간 위에 설정하느냐 사회적인 시간 위에 설정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불행(?)하게도 사회적인 시간 위에 생활 설계를 마련하면서부터 인간의 비극을 싹트기 비롯한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이윽고 눈 녹은 언덕 아래 노루귀의 빨간 꽃 이파리와, 양지꽃의 노란 꽃 이파리가 어우러지고 봄은 제대로 흐드러지게 실컷 웃는 동안 우리는 우리대로 또 다시 춘궁을 복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참으로 그 언젠가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봄을 기필코 살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갈망하는 영원한 고향이기에….